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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여유 ------…─• †/″```о♡ 제주도오름

[스크랩] 송악산

    ▲ 사계앞바다에서 바라본 송악산

 

 

작고한 작가 최명희씨의 소설 '혼불'을 읽다보면 애(愛), 원(怨), 한(恨)을 표현하는 문학적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 '혼불'은 기구한 삶을 마지막으로 불태우며 승화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도 바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모슬포에는 해송이 많다하여 "송악산(松岳山)"이라 이름 붙여진 오름이 있다. 송악산은 제주의 오름들 중에서도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안에 절망의 미학을 감추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혼불'의 애, 원, 한처럼….

 

검푸른 남태평양의 파도가 넘실대는 제주의 땅 끝에서는 항상 바람이 분다. 땅에 붙고자 그 쓰라림을 무릅쓰고 생겨난 검은 화산재의 절벽과 그 안쪽에 감춰진 봉긋봉긋한 오름들. 그리고 맑게 개인 날 하늘을 바라보며 쪽빛을 발하는 바다가 있다. 이런 모든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우리가 모르는 내면의 정서를 일깨워 낸다.

송악산은 이런 아름다움으로 제주 최고의 절경을 이룬다. 그러나, 송악산은 오름이 빚어낸 절경보다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얘기와 역사의 뒤안길에 잊혀져 가는 아픈 과거를 같이 느껴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것이다.

 

송악산을 기대고 있는 높은 절벽 밑을 보면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있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다면 당연히 해식동굴이겠거니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임을  알 수 있다. 1944년 말 일본 해군이 괴멸되면서 진지 구축 작업에 혈안이 되었고 일본군은 제주도를 일본 본토 방위거점으로 지목, 제주도 전역에 요새화 작업을 서둘렀다. 송악산 절벽 밑의 동굴은 이때 만들어진 일본군의 군사시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1926년부터 제주도내에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송악산 남서쪽에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도 송악산 남서쪽 들녘에는 격납고가 수 십기 남아 있는 비행장의 형태가 그대로 있다. 송악산은 자연 경관만 최고가 아니라 지형적으로도 군사시설이 들어서기에 최적지였던 모양이다.

이외에도 송악산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 때문이었는지 수난이 많았다. 송악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알뜨르 비행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아 있는 제주의 아픈 과거, 4.3항쟁의 잔재가 그것. 그 당시 학살되었던 양민들의 유해 발굴터와 발굴했던 시신을 안치한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가 보는 이의 가슴을 흉흉하게 한다.

 

여행지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자면 경치가 좋은 곳, 쉬기 좋은 곳,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을 떠올린다. 송악산은 멀리 남태평양과 그 속에 파묻힌 마라도, 용머리해안 그리고 형제섬 까지 아우른 풍광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 최고의 비경이며 훌륭한 여행지임에 틀림이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곳에 삭막한 왜정 군사시설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더군다나 이런 시설을 만드는데 제주 사람들이 강제 동원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울분이 생기고, 요즘 일본이 저지르는 역사 왜곡까지 떠올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

 

그러나 예전의 아픔과 절망을 딛고 아름다운 여행지로써의 미학과 함께 역사적 체험지로 우뚝 거듭나는 송악산이 있음을 보았으면 한다. 송악산은 아픔의 세월을 이겨낸 "혼불"과 같은 존재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송악산 분화구

 

 

   

          ▲  오늘의 송악산은 과거의 아품과 절망을 안은채 가슴저릴만큼 아름다운 풍관으로 다가온다.

               (알뜨르에서 본 산방산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사용했던 비행기 경납고)

 

 

 

          ▲ 송악산 산책로에서 보이는 전경. 한라산, 마라도, 가파도, 형제섬, 산방산이 모두 보인다.

 

 

              ▲  자연해식 동굴로 착각하기 쉽지만 1944년 말 일본 해군이 구축해 놓은 요새

             ▲ 백조일손지묘는 시신을 구별할 수 없었기에 '백 할아버지의 자손' 이라는 뜻으로 붙혀진 것이다.

출처 : 한라트레킹클럽
글쓴이 : 오름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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