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박쥐를 마을 어귀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그런데, 제주도에 그런 박쥐를 닮은 오름이 있다니...
산방산 주변에 있는 ‘바굼지오름’은 과거에 바구니를 닮기도 하고
박쥐를 닮기도 하여 ‘단산(簞山)’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대개 제주의 오름이라면 봉긋하게 솟은 가운데 분화구가 있는 게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굼지오름은 말 그대로 ‘박쥐의 모양을 한 오름이기에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좀처럼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제주시에서 평화로(95번)를 따라 산방산 주변에 이르니
두 봉우리가 솟아오른 오름이 보인다.
처음 바굼지오름을 보았을 때에는 그다지 ‘박쥐 모양을 한 오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사계리 바닷가 쪽으로 난 길을 향해 가던 중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박쥐가 크고 검은 날개를 펼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세에 눌려 한동안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예전에 ‘배트맨’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박쥐’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어린이들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하늘을 날며 ‘배트맨~’하고 소리치며 정의를 위해 착한 사람들을 돕는 배트맨.
그처럼 바굼지오름도 마냥 신기해 보였다.
오름 가까이에 갔을 때, 그 위용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다소 비탈진 오름을 올라보았다.
오름의 윗 부분은 대부분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랫부분은 풀밭을 이루고 소나무와 보리수나무로 장식되어 있다.
끝이 보일 듯하면서도 안 보이고,
끊긴 길인 것 같으면서도 계속 이어진 오름의 샛길은 신비한 이미지로 내내 다가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했고, 가시나무가 많아서 등반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었다.
곳곳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지만,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다.
(바굼지오름의 왼쪽 날개쯤 되었으리라.)
그 정상에 다다랐을 때, ‘우와~!’ 하고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왔다.
눈앞에는 눈부시도록아름다운 가을 들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가을 옷을 입은 한라산이,
그리고 바로 가까운 곳에 큼지막하게 산방산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이었고,
남쪽으로는 마라도까지 훤히 보이는 대정 앞바다가 보였다.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온다는 느낌을 받고 그 쪽을 보니 까마득한 절벽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사람들이 느꼈음직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정돈된 밭은 가을의 향기를 가득 품고 파릇파릇한 물감으로 물든 듯하였고,
곳곳에 가을을 걷어들이는 부지런한 농부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오름에서 내려오다가 볼래가 보여 맛을 보니 그 어릴적 많이 따서 먹었던 기억이 되 살아난다.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바굼지오름 밑에는 정기를 이어받은 대정향교가 고즈넉하니 자리잡았다.
대정향교 입구에는 ‘새미물’이라 하여 산기슭에서 석천(石泉)흐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굼지오름과 모슬봉 사이에 기(氣)가 허하다고 하여 만든
‘인성리 방사탑’이 이제까지 봐 온 방사탑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바굼지오름에 대한 신비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름 주변길을 따라 한바퀴 더 돌아보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한 바굼지오름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신비하게만 느껴진다.
지금까지 나의 시선은 늘 크고 둥글둥글한 산방산에서 멈추었었다.
다시금 이 곳을 스쳐 지나갈 때, 바굼지오름을 그냥 스쳐보낼 수 있을까?
용감무쌍한 모습으로 남부지방을 지키고 있을 바굼지오름을 또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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