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답성)
2018. 2. 26
조선 시대 읍성들은 평야 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었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성안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고창읍성은 나지막한 야산을 이용하여 바깥쪽만 성을 쌓고 해자(垓字)를 팠으며, 성안에서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네 개의 우물과 두 개의 연목을 만들어놓았다.
성벽을 쌓은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굄돌을 넣는 방식으로 쌓았으나, 그 가운데는 초석(礎石), 당간지주(幢竿支柱) 같은 것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그러나 미석[성의 맨 아래에 성벽 바깥으로 내밀게 깐 얇은 돌] 이하의 성갈퀴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제각각이라 1m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땅에 깔려 기둥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있어 이채롭다. 특히 성벽에 전라도 도민들이 총동원하여 축성함으로써 안보총화의 예지와 외침을 대비한 유비무환의 풍토를 조성했던 산 증거들이 각자되어 있다. 고창읍성은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위치는 고창읍 읍내리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고, 고창읍성에 올라서 보며 고창읍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주변에 고창군청, 고창군립미술관, 고창판소리박물관, 고창문화의 전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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